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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속도 그리고 기억의 중첩

                                                                                                       

- 정현 (미술비평, 인하대 교수)

 

강도로서의 빛

 

사진의 빛에 의해 완성된다. 다시 말해 사진술은 빛을 다루기 위한 수련의 과정이라 해도 과 언은 아니다. 빛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순간은 적당한 조도로 눈이 편안한 상태가 아니 라 그 반대이다. 빛의 과다 노출(over-exposed) 혹은 과소 노출(under-exposed)로 찍힌 사 진은 어떠할까? 빛의 양의 차이는 곧 질의 차이가 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조건은 사진의 독 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즉 우리가 빛에 반응하는 감수성이 극대화되는 때는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에 노출되었을 때거나 반대로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지의 캄캄한 밤일 터이다. 아무리 밀도가 촘촘한 어둠이라 해도 인간의 망막은 서서히 그 속에서조차 빛의 실마리를 찾아낸다. 빛의 예민함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마도 칠흑색으로 덮인 어둠 속에서 일 것이다. 보르헤스가 가족력으로 시력을 잃었지만 그는 시각이 사라진 세계에서조차 빛과 어둠만으로도 그 누구보다도 시적이고 강렬하게 세계를 인식했고 실존하는 게 무엇인지 물었 던 것처럼 말이다, 조준용의 대부분의 사진은 이처럼 가장 어두운 순간에 발견한 빛에 의하여 촬영되었다. 그가 사진을 일부러 밤에 찍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늦은 밤 귀가할 수밖에 없었기에 밤 사진을 찍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빛과 어둠에 대한 예민함은 밤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싶은 열정 덕분인 셈이다.

 

 

사회와 나

 

조준용의 사진에는 하나의 이미지와 하나의 배경이 있다. 하나의 이미지는 정지된 순간이자 고정된 시간이고 하나의 배경은 현실의 시간이다. 즉 두 개의 서로 다른 유형의 시간, 그러니 까 각기 다른 순간들이 사진 안에서 겹쳐진다.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하나의 이미지는 역 사를 비유하거나 반영하고 있으며 하나의 배경은 작가가 실제로 살고 있는 시간으로 부정할 수 없는 실존의 시간이다. 이른바 ‘역사’로 지시할 수 있는 정지된 시간의 이미지는 다양한 경 로로 인용 혹은 추출된다. 런던에서 촬영한 “Crystal Time series”(2013-2014)는 BBC 웹사 이트에서 실시간으로 일어나는 전세계의 다양한 사건사고의 이미지를 야외에서 빔프로젝터로 영사한 후 이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작가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두 가지의 요소들을 서로 엮어낸다. 첫 번째는 동시대 미디어의 속성이다. 오늘날 미디어는 다중의 상호적 사회관계망에 의해 구체화된다. 걸프전부터 시작된 미디어의 프레임으로 보여 지기 시작한 온갖 정치사회적 사건과 재난은 이후 미디어에 의해 지배되는 미디어권력의 시대 를 예견했다. 더 이상 미디어권력은 일방적일 수 없지만, 대신 신자유주의 가치관으로 견고해 진 미디어자본의 영향력은 일원적 미디어에서 개인을 해방시켰지만 반대로 또 다른 굴레에 갇 히게 만들고 말았다. 그 굴레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결국 그 속에 스스로 감금되는 것이다. 조준용은 익숙하고 일상적인 방식으로 실시간으로 검색되는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정보들을 추출한 후 이 이미지 정보를 런던 거리에서 영사한다. 하나의 배경 이 된 거리에 반투명한 천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투사한 장면을 사진으로 포착하는 것이다. 여기서 인상적인 작가의 말이 떠올랐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조준용은 시간이 없어서 밤에 사 진을 찍게 되면서 공교롭게 이 경험이 실제 자신만의 형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흥미로 운 점은 밤에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사진술의 교본이 아니라 동물적인 감각을 발달시켜야 한 다는 것이다. 야외 현장에서 빛은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이다. 자동차, 가로등, 건물에서 내뿜 는 불빛들은 밤의 공기를 타고 흐름을 따라 대도시를 유영한다. 그래서 주변의 상황을 파악하 고 적절한 조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두 번째는 바로 사건과 자신 간의 관계에 관한 질문 이다. 그의 행동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는 행동이다. 정보는 넘치 고 클릭 한 번만으로도 사회적 참여를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만드는 게 스마트미디어 의 성격이다. 중첩된 이미지 – 사건의 이미지와 평범한 일상의 중첩 – 는 어떤 유관성을 내 포하지 않는다. 작가는 사회적 참여나 ‘타인의 고통’을 전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온갖 시각정 보들이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되는 현상이 막상 개인과는 분리되어 있음을 묻는다.

 

 

아버지와 나

 

이제 세계는 속도에 의해 구성된다. 속도는 근대의 이상이었고 기계문명에 의한 시간의 지배 를 의미한다. 조준용의 사진은 시간에 관한 물음이자 시간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사진은 예나 지금이나 빛과 시간의 관계에 의해 생성되는 이미지이다. 그의 사진은 어쩌면 사진만의 고유 한 속성을 밤이라는 시간에 의해 강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에서의 작업이 사진 촬영이 라는 물리적 문제들을 풀어내면서 동시에 사진의 생성과 시간에 관한 존재론적 고민의 시간이 었다면 이번 전시 <Memory of South 416 km>는 질문의 폭을 좁히고 깊이를 찾기 위한 프 로젝트로 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버지에 관한 작업이자 아버지가 걸어온 발자취로부터 한국의 근대를 되돌아보는 작업이기도 하다. 시작은 아버지의 젊은 시절 앨범이었다, 앨범은 월남전 참전 당시의 본인이 찍은 사진과 남이 찍은 사진들로 채워져 있었다. 현재 작가의 나 이보다도 젊은 시절의 아버지가 본 베트남의 인상들은 이국적이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다. 작가는 이 사진들을 스캔한 후 ‘하나의 이미지’로 사용해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면 을 따라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다. 사진 작업은 고속도로 주변 방음벽이나 노지의 나무들을 스 크린 삼아 촬영했고 영상 작업의 경우는 자동차 내부에 모두 6대의 카메라를 설치해 360도 전망을 확보했고 도로를 향해 사진을 투사하는 장면을 촬영했다. 교통 상황과 주변 환경에 따 라 투사된 이미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면서 흥미로운 중첩의 장면이 연출된다. 작가가 경 부고속도로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알다시피 한국의 베트남 참전은 경제적 이유 때문이었 다. 문명과 속도의 관계는 결국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문명의 가속화는 소유와 독점의 욕망 으로 부풀어졌고 그 끝은 처참했다. 한국의 베트남 참전은 뒤늦은 근대화를 위한 개발의 요 구, 욕망으로 결정되었다. 월남전 파병과 경부고속도로는 한국사회의 개발주의와 토건국가로 성장하는 토대였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경부고속도로가 한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건설된 사회간접자본의 상징적 존재이며 또한 고속도로의 완공 이후 산업과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부실시공으로 인한 후유증은 와우아파트 붕괴사 건에서와 같이 성과 위주의 개발방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1)

조준용은 아버지의 기억을 이미지로 사용하고 독재정권에 의한 국가개발정책이라는 이중적인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경부고속도로를 배경 삼아 이 둘을 중첩함으로써 개인의 기억과 기 념비적 역사의 현장을 교차시킨다. 개인의 기억이 박제화 되었다면 기념비적 역사의 현장은 앞선 인용문에서 설명하듯, 현재 한국사회의 바탕으로 볼 수 있겠다. 조준용은 사진의 전통적 인 요소를 개념적으로 분류하여 사진의 정체성을 질문한다. 조형적 실험의 바탕에 내재된 이 미지와 사회, 역사와 개인 간 관계에 관한 탐구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과 역사 사이의 좁은 통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정역사교과서가 점점 정치적 논쟁으로 심화되는 즈음 이다. 역사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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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태균, 「와우아파트,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주한미군 감축」, 역사비평, 2010, 역사비평사,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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