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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rial Roundabout>

정소라 큐레이터

전시 <Memorial Roundabout>은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서로 다른 이야기, 장소, 시간을 한 프레임에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맥락을 제 시하는 조준용 작가의 개인전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국 유학에서 돌아와 지속 적으로 선보였던 ‘Memory of South, 416km' 사진 연작들을 가지고 교차로와 같 은 갤러리 공간을 하나의 원으로 연결하는 장소 특정적 작업을 소개한다. 이 연 작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아버지가 직접 촬영하고 수집한 사진들을 경부고속도 로에 프로젝터로 투사하고 그것을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낸 것이다. 이 작업 들은 과거의 프레임화된 시간을 ’결코 아무것도 정지시킬 수 없는‘ 장소인 고속 도로에 투사시킴으로써 소멸해가는 것들을 되살리고, 혼재된 시간성 속에서 열 린 의미들을 생산해낸다, 여섯 대의 카메라를 장착하고 경부 고속도로 위를 달리 면서 투사된 아버지의 사진을 촬영한 ’High Speed Rhythm'도 3채널 영상작업으 로 이번에 함께 전시된다. ‘Memory of South, 416km’는 작가가 오래된 아버지의 사진들을 연작의 이름과 같은 앨범에서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25살에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고, 그곳에서 틈틈이 촬영한 사진들과 수집한 기록들을 보관하고 있었 다. 그 당시의 한국은 제 2차 경제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서울과 부산을 잇는 416km의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되는데, 이 고속도로 건설의 자금으로 베트 남 전쟁 파병의 대가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 개인의 역사와 기억은 마치 이 세 계와 독립적으로 형성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것은 거대 서사와 긴 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작가의 작품 속 배경인 경부고속도로와 전경의 이국적인 풍경과 군인들의 이미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들로 얽혀 있다. 그런데 작 가가 찾아낸 아버지의 기억 속 타국의 장소와, 사진에 가두어진 과거의 시간은 고속도로에 투사되기 전에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조준용은 이 멈추어진, 상실된 개인의 서사를 ‘지금 여기’, 현재의 특정 공간으로 소환함으로써 새로운 맥락과 의미들을 부여하며 모든 것을 현재 진행형으로 바꿔 놓는다. 여기에서 특 정 공간은 사진이 투사된 고속도로와 전시가 열리는 KAIST 로비 및 통로를 가리 킨다. 특히 고속도로는 다른 일상의 장소들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어떤 것도 멈 추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가는 마치 플랫폼과도 같은 성격의 장소이다. 즉 특정한 개인의 기억과 경험이 새겨지기 어려운 익명의 장소이다. 그렇기에 특정한 과거 의 기억과 기록은 비어있는 현재의 장(場) 위에 놓임으로써 풍부한 해석과 사유 로 새롭게 읽혀지게 된다. 조준용의 사진에는 서로 다른 주체와 시선 그리고 장소와 시간이 중첩되어 있 다. 개인의 작은 서사와 거대 집단의 서사, 과거와 현재, 누군가의 프레임에 의해 고정된 기억과 계속해서 유동적으로 흘러가는 익명의 기억, 아버지의 시선과 아 들의 시선이 서로 직조되어 있다. 서로 다른 층위와 의미를 갖고 있던 것들을 뒤 섞고, 또 한편으로는 불평등하게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던 가치들을 한 프레임에 끌어안음으로써 역사와 시대 그리고 개인이 갖는 의미들을 재조명하고 재맥락화 하면서 이해의 영역을 확장시킨다. 그 결과 조준용의 작업은 쉽게 삭제되어버리 는 한 개인의 역사가 실제로는 어떻게 거대한 역사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 며, 역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한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크고 작 은 영향들을 받는지를 보여주며 우리를 더 깊은 사유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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