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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ass city>
35mm 소형 자동카메라에 칼라 네거티브 필름을 장착하고 운전을 시작한다. 사람과 차가 복잡하게 얽힌 일반 도로에서 떨어져 나와 자동차만이 달릴 수 있는 순환도로 위로 진입한다. 이와 같은 환경과 상황에서 흔들림 없는 초점이나 정확한 노출을 계산할 여유로운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다. 오히려 좀 더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신체 감각에 의존해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집중한다. 자동차의 소음을 차단하는 순환도로의 방음벽 사이로 도시의 잔상이 스쳐 지나간다. 카메라의 파인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기록한 도시의 이미지는 마치 일시 정지된 순간처럼 방향성과 장소성을 상실하고 그 순간의 ‘현재’, 그 찰나에 새겨진 익명의 공간으로 변모된다. 그렇게 촬영된 복수의 현재들, 그 연쇄적 현재가 생성하는 도시의 움직임은 카메라의 수평계와 함께 평행선을 이루며 유한한 속도의 세계에서 방향을 잃은 채 그 감각만을 가중한다. 달리는 차에서 촬영하는 유리 풍경, <Glass City> 연작은 특정 대상을 쫓지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가 놓인 특수한 환경과 촬영하는 순간의 상황을 수용하며, 입체적인 시점에서 대상을 살피기보다는 수평적으로 배열된 평면적 흐름을 통해 복수의 현재를 보여준다. 이러한 수집된 풍경의 파편 더미는 어떠한 정체성이나 역사성도 지니지 못하는 트랙 위, 즉 이 비-장소(non-place)에서 오로지 속도가 일방적으로 송출하는 시각 신호들인 ‘움직이는 이미지’(moving image)를 기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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