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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uit>

〈Glass city〉, 〈Motor collection〉, 〈Speedway〉 세 연작을 통해 나는 역동적이거나 정적인 시간의 상이한 속도감을 서로 다른 촬영 방식과 사진적 감각을 통해 경험해왔다. 이 세 연작의 배치는 서로 다른 시간에 발생한 공간들을 마치 하나의 사건으로 사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사건들을 하나의 이미지로 묶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안에 작용한 물리적 힘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추적하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은 작업의 시선을 사건의 중심에서 기원으로 이동시켰고, 작업 초기부터 각 연작의 맥락을 작용과 반작용으로 인식해 온 태도는 그 연장선에서 다음 연작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질문 속에서 발견하게 된 문을 닫은 자동차 운전 교육장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과 방향을 지시하는 화살표, 그리고 속도를 제어하는 표지판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많은 운전자들이 거쳐 간 이 장소에는 반복적으로 지나간 차량의 흔적과 낡고 오래된 표면의 입자들이 축적되어 있었으며, 이는 마치 레이싱 경기장(circuit)을 연상시키는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반면 동력을 상실한 공간에서 정체된 나의 시선은 차량 밖으로 잠시나와 운전중에는 볼수 없었던 자유롭고 무질서한 걸음으로 이 세계를 유영하기 시작했다. 운전자의 위치에서는 인식할 수 없었던 시점과 관점은 흑백사진이라는 양극단 사이의 무채색을 통해 드러나며, 색이 소거된 채 선과 면으로 분리된 이 장소의 기능성은 시간이 정지된 듯하거나,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더 이상 필요 없어지는 알 수 없는 평온함과 미세한 비인칭성을 드러낸다. 

이처럼 동적인 움직임과 정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양가적인 공간에서 나의 모드(mode)는 가시적 시간 너머를 기록하는 적외선 흑백 필름(Infrared Black and White Negative Film)으로 전환되었으며, 동력이 상실되어 가는 사건의 징후를 암시하며 어떠한 힘의 방향이나 위치도 존재하지 않는 무-동력의 상태에 잠시 머물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의 시간은 편안함과 낯설음을 교차시키며, 그 어느 쪽에도 오래 머물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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