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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scure driver>

동력을 상실한 공간에서 정체된 나의 시선은 다시 동력에 의해 움직이는 운전자<Obscure driver>와 정지된 풍경<Roadside tree>의 동체를 함께 추적하기 시작한다. 

잠시 머물러 있던 무-동력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운전자는 이곳을 스쳐 지나며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 공간은 멈춰 있지만, 시간은 여전히 익명의 운전자를 따라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짙게 썬팅된 차량의 창문 너머로 옅게 드러난 운전자의 옆모습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서로 다른 속도로 달리던 흐름은 순간적으로 동기화된 속도 속에서 겹치고, 그 찰나의 일치 속에서 형상은 반복적으로 포착되었다가 사라진다. 오른쪽 창문으로만 포착되는 불특정 다수의 운전자는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부유하는 사적 공간 안에 놓여 있다. 은밀하게 작동하는 카메라의 시선은 파파라치처럼 폭력적인 공격성을 내포하지만, 짙게 코팅된 유리창 위로 드러나는 운전자의 실루엣과 제스처는 특정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차단한 채, 도시로부터 소외된 운전자의 일시적인 형상만을 투과한다. 개방적이지만 고립된 이 특수한 시간과 공간에서 일정한 거리와 속도, 그리고 숨어 있는 시선은 익명으로서의 쾌감과 언제든 차선을 바꾸어 회피할 수 있는 군중 속의 안도감을 동시에 확보한다. 이러한 비장소의 세계에서 비인칭의 운전자인 나와 그들은 측면에서 만나고, 측면에서 기록되며, 끝내 선명하지 않은 기호로 남는다. 이러한 사이에서 나의 카메라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주체’라기보다, 비인칭의 운전자와 동일한 조건 속에서 나란히 흐르는 존재로 기능한다. 속도, 거리, 차선, 유리창이라는 조건에 의해 자동적으로 발생한 시선은 서로를 교차시키며, 이 만남은 정면의 대면도 충돌도 아닌, 서로 다른 목적지와 시간을 지닌 존재들이 순간적으로 속도만을 동기화하며 측면에서 스쳐 가는 관계로 성립된다. 이는 사진이 흔히 전제해 온 ‘결정적 순간’이 아니라, 비결정적이고 임시적인 동시성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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